플러피 잘 가, 안녕 내가 사랑하는 개

어제 플러피는 무지개 다리를 건너갔습니다.

진정제를 먹여서 병원에 데리고 갔습니다만, 시간이 지나도 진정제의 효과는 거의 없어서 그냥 병원으로 데려갔죠. 
눈도 보이지 않고 자기를 데리고 어디를 가는지도 몰랐던 플러피는 무작정 발버둥만 쳤어요. 있는 힘을 다해서. 
병원 대기실 안에서도 그랬고.. 심지어 개아범 옷을 막 물거나 병원 인조가죽 소파의 시접 부분을 질겅질겅 씹더군요. 정말 아프고 힘들었던 것 같아요. 
결국 모든 힘을 소진하고난 뒤에는 숨조차도 편히 쉬지 못했습니다. 
-그제야 약효과가 났다고 하기엔 조금 무리이고.. 

과연 이 수술을 해야하나 싶었습니다.
하지 않으면 안구가 어찌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고 수술은 필요했지만.. 
이미 온 몸이 아프고 모든 기관이 쇠약해진데다가 시력까지 잃은 아이에게 그만큼의 고통까지 줘야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다른 수술에 비해서 깊은 마취가 필요한 수술인데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리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혹시 깨어난다 해도 엄청난 고통 속에서 깨어날 것이고 한동안은 그 고통 때문에 다시 식음을 전폐하게 될 것이라는 것도 너무 뻔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억지로 약과 음식을 먹일테고... 그저 연명할 뿐인 삶의 질. 
그냥 보내주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정말 편안히 갔어요, 플러피. 그렇게 발버둥치다가 힘을 잃어서 그런지 순식간에 마취약에 반응하더라구요. 
자는 것처럼 갔어요. 하얀 패드에 곱게 싸여있는데 아주 예뻤어요. 꼭 겉싸개로 싸놓은 아기같더라구요.    
 

정말 선택하고 싶지 않았던 일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보내기 싫었는데 모든 것이 저의 욕심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동안도 거의 먹지 못하는 걸 억지로 뉴트리칼 짜서 목구멍으로 넘기게 하고, 물도 못마실 때는 주사기로 입에 물을 흘려넣고.... 
다 욕심이었던 겁니다. 플러피는 이미 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걸 막고 있었을 뿐인지도 모릅니다. 

후회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후회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미안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미안합니다. 너무 미안합니다.
진작 가려고 할 때 보내주지 못했던 나의 미련과 욕심 때문에 너무 오랜 시간 힘들게 생을 잇게 해서 미안합니다. 눈을 다쳤을 때 진작 제대로 된 처치를 했다면.... 
이런 선택을 하는 상황에 놓이게 만든 플러피가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결국 아무것도 모르게 되어서 그래, 이것이 옳다, 잘 됐다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눈이 부어 머리가 아프도록 실컷 운 편인데도 아직도 눈물 나네요.
참 애증의 십이년과 또 몇 개월이었습니다. 
지난 가을부터 수차례 마음의 준비를 하고, 또 하고.. 그리고 작별 연습을 반복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막판엔 플러피답지 않게 밥을 잘 먹어서, 캔이랑 밥을 섞는 소리만 듣고도 힘들게 집에서 나와 밥을 먹으러 와주어서 그것이 정말 마지막 효도였어요.
마지막날까지도 똥칠은 했어요. 
소화 잘 되는 약을 먹였는데... 두주를 먹었건만 처음엔 약이 잘 듣나 했더니 나중엔 거의 원상복귀하더군요.

사실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미리 새옷을 지어놓았었어요. 
목요일 오후에 힘들게 목욕을 시키고 새 옷을 입혔는데 이미 새 옷도 얼룩지고 냄새나고..... 
그렇게 갔죠. 
플러피다워요. ㅠ_ㅠ 


집에 돌아와 플러피 남긴 짐들을 정리하는데 가기 전에 플러피 집안의 전기장판도 끄지 않은 걸 보며 다시 울었습니다. 
정리해도 정리해도 정리할 짐은 끝없이 나오고... 
플라스틱으로 지어진 집이 두채, 매일같이 갈아줘야 했던 털방석과 옷가지등은 50리터 쓰레기 봉투로 하나 가득 터질만큼 많고.. 
개아범은 재활용을 한번에 내가지도 못하고 네번인가 오르락내리락하며 내다놓을만큼 많았습니다.  


아침녘에 꿈을 꾸었어요. 플러피가 하얀 털을 날리면서 집 안을 뛰어다녔어요. 즐거운 표정으로 뛰어다녔어요. 
할머니 돌아가시곤 할머니 꿈 별로 못꿨는데, 플러피 그냥 가볍게 마음 털고 갔나봅니다. 


잘 가, 플러피. 
잘 자. 
엄마는 무신론자에 내세를 믿지 않지만, 혹시라도 내가 틀려서 내세라는 게 있다면 내 사랑하는 할머니를 만나서 놀아드리렴. 
엄마가 정말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부디 나에게 했던 것처럼 말썽은 피우면 안된다. 아무리 말썽피워도 잘 돌봐주실 분이지만..   
이제 나의 하루는 결코 네가 있었던 시간과 같아질 수 없을 거야. 
  


그동안 마음 써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날이 풀리고 꽃 피는 즈음이면 이 아픈 다리도 좀 더 낫고... 그러면 마음도 나아질 거에요. 




-지난해 4월

덧글

  • 동굴곰 2012/04/02 12:04 #

    저는 기독교인이지만, 딱히 제가 믿는 종교의 저승이나 내세와는 관련없이^^;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과 동물들은 모두 좋은 곳에서 함께 행복하게 지낼 거라고 생각해요. 플러피도 좋은 곳에서 이제 아프지도 힘들지도 않고, 그저 저 좋을대로 뛰어놀고 뒹굴다가 가끔 '엄마는 뭐 하나' 내려다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잘 지낼 거라고 믿습니다. 아마 시냇물 몇 개 언덕 몇 개 지나면 제가 보낸 구슬이와 토리가 사는 언덕도 나오지 않을까요^^: 다들 싸우지 않고 사고치지 않고 사이좋게 놀면서 '엄마는 천천히 와, 그래도 나중에 꼭 만날 거니까' 해주겠죠. 그렇게 믿습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프신 데 얼른 나으시길 바라요. 좋은 하루 되세요;ㅅ;/
  • cahier 2012/04/02 14:42 #

    고맙습니다. 플러피는 동물 친구들을 새로 사귀어야할텐데.. 다른 개들을 싫어해서 걱정이네요 ㅠ_ㅠ
    비오는 날 마음도 우중충하게 해드려 죄송해요~
  • 2012/04/02 13:55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cahier 2012/04/02 14:45 #

    머리속으로 이런 선택의 시나리오를 수십 수백번을 더 돌린 것 같습니다.
    선택 그 자체가 죽음 이상으로 고통스러운 것 같아요.
    격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캔이 한박스 그대로 있고... 사료도 한봉지 안뜯은채로 남았어요. 뉴트리칼도 박스째로..별 거 아니지만 필요로하실 분 있으면 찾아주세요. 집도 멀쩡한 게 두채나 되어 보호소에라도 보낼까 했는데... 그냥 버렸네요..
  • 2012/04/02 15:26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cahier 2012/04/03 10:59 #

    그러게요, 그렇게 평생 저 고생시키더니, 바로 다음날 아침 꿈에서 괜찮다고 말하려고 했나봐요. 라고 쓰는데 울게 되네요. 하하.
    그렇게까지 해주는데 괜찮아져야죠.
    어서 날씨 따뜻해졌으면 좋겠어요.
  • 하나또 2012/04/02 16:22 #

    플러피는 좋은 곳으로 가서 행복하게 지내며 고통 없이 뛰어놀고 있을거라고 믿어요.
    남은 가족들의 상처가 빨리 아물어서 좋은 추억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 cahier 2012/04/03 11:00 #

    위로 정말 감사합니다.
    미운 시어머니 죽으면 그렇게 서럽다더니.. 흐흐흐흐.. 이 자식 고생을 많이 시켜서 그런가 보내고나니 왠지 더 서러워요.
  • 2012/04/02 20:11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cahier 2012/04/03 11:07 #

    오랫만에 뵈어요.저도 얼마 전에 하도 소식이 없으셔서 블로그 찾아갔었는데... 인사도 못적고 돌아왔어요.
    나아졌다는 게 사실 덜덜거리며 네 다리로 설 수 있게 되었다, 똥칠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정도라..
    지난 가을에 팍 아팠던 게 컸던 것 같아요. 그냥 늙느라 그랬다고나 할까, 위니도 그 즈음에 한번 아팠거든요.
    그렇게 한번씩 아프면서 늙는가봐요.
    안와도 좋을 날이지만 피할 수도 없는 날이니..
    만화나 소설에서처럼 동물들이 죽을 때가 되면 사라져버린다면 어떨까 생각해봐요. 작별인사도 없이.. 그것도 그 역시 서럽겠죠. 이런 식으로 보내게 되었다는 게 제일 서러워요.
    솔님댁 아이들도 부디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아프지 않기를... 나이든 아이들과 살고 있는 사람 모두의 희망이겠지만요.
    애기들은 괜찮은가요?
  • 늘보 2012/04/03 17:07 # 삭제

    올해는 참 힘든 봄이지요?
    다시 먹고 움직여서 다행이다 했더니 결국.
    무엇보다 쥐님도 다리랑..나으셔야지요
    위니도 나이가..생각못했어요. 아픈 형제가 있는 아이의 서러움이랄까.
    비교돼서 마냥 든든하게만 보이는.
    그래도 질투안하고 같이 마음쓰는듯했던 의젓한 위니-

    아으- 빨리 또 따땃해지고 쥐님 다리 나으셔야
    위니 코믹샷을 볼수있을텐데요-
  • 2012/04/05 20:31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레몬 2012/04/14 21:13 # 삭제

    아.... 쥐님 미안해요.
    끝까지 포기 하지 말아 달라고 했는데 ... 플러피도 쥐님도 많이 아팠을거라 생각하니 괜한 말을 해서 더 마음쓰게 했나 싶어요. 휴...
    플러피 좋은 곳 갔을거에요. 그곳에서 즐겁게 뛰어놀고 있을거에요. 힘내세요 쥐님 (__)
  • 쭈녀기맘 2012/05/15 23:44 # 삭제

    한동안 못왔는데..
    슬픈소식이네요...
    쥐님 얼마나 힘드셨을가....
    그래도 플러피꿈을 꾸셨다니....
    엄마맘 편하게 있으라 위로하는것 같네요
    지금은 어찌 맘이 괜잖아 지셨는지 모르겠습니다...

  • 2012/06/22 00:32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cahier 2012/06/22 11:18 #

    잘 계셨나요? 오랫만이에요.
    저는 팍팍 늙고있어요. ^_^
    가끔 블로그 가요^^ 휴대폰에 즐겨찾기를 해놔서 휴대폰으로 웹서핑하면 종종 가보거든요.

    그땐 아직 많이 추웠어요 ㅎㅎ
    벤지 어떤가 묻는 댓글을 시나몬네 블로그에 썼던 거 같은데.... 답을 듣기가 두려울 정도네요.
    아, 모르겠어요. 플러피 보면서 비슷한 연배의 벤지 생각도 많이 하고.. 그랬었거든요.
    아직도 가끔은 플러피가 살아있는 것 같아요. 그냥 잘 믿어지지 않는.. 받아들이기는 하는데 말이 안된다는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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